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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행

일본 쌀 시장의 소동 – 묵은쌀 반값, 조기 완판 그리고 쌀 한 톨의 가치

by 여행을찜 2025. 6. 17.

일본 쌀 시장의 소동 – 묵은쌀 반값, 조기 완판 그리고 쌀 한 톨의 가치

2025년 여름, 일본의 쌀 시장은 그야말로 ‘소동’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요동치고 있습니다.
도쿄의 한 대형 슈퍼마켓 앞,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습니다.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최신 스마트폰도, 한정판 명품도 아닌 바로 ‘묵은쌀’입니다.
묵은쌀이지만 반값, 그리고 조기 완판. 이 세 단어가 요즘 일본 쌀 시장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.

 

일본, 묵은쌀 반값, 조기완판
일본, 묵은쌀 반값, 조기완판

 

“묵은쌀이지만 반값” – 일본 비축미, 온라인에서 순식간에 동나

올해 5월 말, 일본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2022년산 비축미를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.
가격은 5kg에 1,980엔(약 1만9천 원), 시중 쌀값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.
그런데 이 ‘묵은쌀’이 온라인에 풀리자마자 1~2시간 만에 완판되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.
일본 농림수산상(장관)까지 직접 나서서 묵은쌀로 밥을 짓고, 언론에서는 ‘구곡 맛있게 먹는 법’까지 소개하는 등, 쌀 한 톨이 이토록 화제가 된 적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.

 

 

쌀값, 1년 만에 두 배…왜 이런 일이?

2025년 6월 기준, 일본 슈퍼마켓에서 쌀 5kg 평균 가격은 4,200~4,300엔(약 4만 원)으로 1년 전의 두 배가 넘습니다.
니가타 고시히카리 같은 고급 쌀은 60kg에 2만8천 엔(약 25만 원)까지 치솟았고, 평소 쌀에 애착이 강했던 일본 소비자들조차 대만·베트남·한국 등 외국산 쌀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.

왜 이렇게 쌀값이 올랐을까요?
가장 큰 원인은 2023년 기록적인 폭염과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량 감소, 그리고 품질 저하입니다.
여기에 외국인 관광객 급증으로 초밥과 주먹밥 등 쌀 소비가 늘었고, 유통과 재고 관리의 혼선, 일부 도·소매상인들의 사재기까지 겹치면서 쌀이 ‘없어서 못 파는’ 상황이 이어졌습니다.
일본 정부의 쌀 감산 정책, 즉 쌀 생산을 줄이라는 지침도 결국 공급 부족을 부추긴 셈입니다.

 

 

묵은쌀, 반값, 그리고 조기 완판 – 일본의 ‘쌀 소동’

비축미 방출은 일본 정부가 쌀값 급등에 대응해 내놓은 특단의 조치였습니다.
경쟁 입찰 대신 수의계약 방식으로 유통 단계를 줄이고, 유통 경비를 최소화해 소비자 가격을 낮췄습니다.
하지만, 이 묵은쌀 역시 워낙 인기가 높아 온라인 판매 개시 1~2시간 만에 동이 났습니다.
정부는 ‘전매 금지’(구입가보다 비싸게 되팔면 처벌)까지 도입했지만, 쌀을 사려는 시민들의 줄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.

 

 

외국산 쌀, 그리고 한국쌀의 ‘깜짝 인기’

쌀값이 두 배로 뛴 일본에서는 미국, 대만, 베트남, 그리고 한국산 쌀까지 수입이 늘고 있습니다.
특히 한국쌀은 35년 만에 일본에 수출되어 며칠 만에 완판되는 등 깜짝 인기를 누렸습니다.
일본 농협 판매망에서도 이례적으로 한국쌀이 판매되었고, 일본쌀과 맛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동안 ‘한국쌀 쇼핑’이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되기도 했습니다.

 

 

쌀 소비는 줄고, 쌀값은 오르고…일본 쌀의 미래는?

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1인당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고 있습니다.
2021년 기준, 일본인의 연간 쌀 소비량은 50.8kg으로, 한국보다도 낮은 수준입니다.
그런데도 쌀값이 이렇게까지 오른 이유는, 고령화와 식생활 변화로 쌀 소비가 줄 거라는 정부의 예측이 빗나갔기 때문입니다.
특히 2024년에는 밀가루 가격 상승과 관광객 급증, 이상기후 등으로 쌀 소비가 오히려 늘었고, 품질 좋은 쌀의 생산량은 줄어들었습니다.

 

 

일본 정부의 대책과 남은 과제

일본 정부는 비축미 방출, 수입 확대, 유통 개선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.
스마트 농업 도입, 청년 농업인 육성, 쌀 식품 개발 등 중장기적 과제도 추진 중입니다.
하지만, 기후변화와 글로벌 시장 변화, 농업 인구 감소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.

 

 

“쌀 한 톨의 가치”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일본의 쌀 소동

쌀값이 두 배가 되고, 묵은쌀이지만 반값에 순식간에 팔려나가는 일본의 풍경은
식탁의 기본이 흔들릴 때 사회 전체가 얼마나 불안해지는지, 그리고 식량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.
일본의 쌀 소동은 단지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,
기후위기와 글로벌 식량 시장, 그리고 농업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합니다.

오늘 저녁,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
그 한 톨의 쌀이 어떤 여정을 거쳐 내 식탁에 오르게 되었는지,
잠시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.

 

 

 

‘古米’는 수확 후 1년 이상 지난 쌀, ‘古古米’는 2년 이상, ‘古古古米’는 3년 이상 된 쌀을 의미합니다.
과거엔 장기 저장 시 향이나 식감 저하, 트레이서빌리티 부족 등의 이유로 품질 우려가 있었지만 , 이번 판매된 비축쌀은 정부가 허가한 식품 위생 기준에 맞춰 관리되어, “신맛과 냄새가 없고, 밥맛도 나쁘지 않았다”는 현장 평가가 나옵니다 . 결국 소비자들은 절반 가격이라는 장점과 정부 품질 보증에 주목한 것입니다.